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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고전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 호메로스가 묘사하는 그리스 영웅의 모습

by 성장하다 2024. 4. 7.
호메로스 저/천병희 역/도서출판 숲

호메로스가 묘사하는 그리스 영웅의 모습

호메로스 《일리아스》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카이사르가 로마 군대에 준 그 막대한 금품도 호메로스가 인류에게 준 선물에는 미치지 못한다.”

호메로스는 소아시아의 이오니아 지방에서 태어난 음유시인이다. 학자들은 호메로스의 활동 시기를 대개 기원전 8세기 말로 보고 있다. 호메로스의 양대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그리스의 언어와 문학, 조형미술 나아가 그리스인들의 자의식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단테의 《신곡》,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 수많은 작품들이 호메로스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서구의 후대 명작과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일리아스》는 전쟁이 10년째 되던 해, 아카이오이 진영에 역병이 도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가멤논이 아폴론을 모시는 사제의 딸 크뤼세이스를 납치하였기 때문이다. 아킬레우스가 크뤼세이스를 풀어주자고 하자, 아가멤논은 아킬레우스의 전리품인 브리세이스를 대신 데려가겠다고 한다. 말다툼 끝에 아킬레우스는 마음이 상해 전투를 거부하고 함선에 틀어박힌다. 

헥토르의 눈부신 활약으로 아카이오이족은 위기에 빠진다.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에게 그의 무구를 입고 자신만이라도 출전하겠다고 간청한다. 아킬레우스는 이를 허락하지만 트로이아인들을 함선에서 몰아내면 더이상 쫓지 말라고 당부한다. 파트로클로스는 그의 조언을 잊고 성벽까지 트로이아인들을 추격하다가 헥토르한테 전사한다.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에 분노한 아킬레우스는 참전하여 헥토르를 죽이고 그의 시신을 전차에 끌고 다니며 그를 모욕한다. 헥토르의 아버지 프리아모스 왕은 아들의 시신을 되찾기 위해 막대한 몸값을 가지고 홀로 아킬레우스를 찾아간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준다.

《일리아스》는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하여 아킬레우스가 원한과 슬픔을 잊고 프리아모스에게헥토르의 시신을 내주는 장면으로 끝난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분노하는 아킬레우스의 모습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영웅상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는 전리품을 아가멤논에게 빼앗겼다는 이유로 격분하여 출전을 거부하고 함선에 틀어박혀 수많은 아카이오이족의 죽음을 방관했기 때문이다.

속내를 감추는 현대적인 영웅상과는 달리,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당대의 그리스 영웅들은 화가 나면 미친듯이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당연했다. 호메로스 작품에서 묘사되는 인간은 감정과 행동 사이에 갈등이 없다. 슬픈 일을 당하면 눈물을 흘리고, 두려운 감정이 들면 달아난다. 그 결과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간은 그의 행동을 통해서 완전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아킬레우스가 분노한 이유는 정당한가? 아킬레우스가 참전한 이유는 다른 영웅들과 다르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다른 영웅들은 과거 헬레네의 구혼자였고, 누가 헬레네의 남편이 되든 나머지 사람은 모두 남편의 권리를 지켜주겠다는 맹세를 했기 때문에 참전한 것이다. 반면, 아킬레우스는 헬레네의 구혼자가 아니였기 때문에 굳이 참전할 의무는 없었다. 

아킬레우스가 참전한 이유는 명성을 얻기 위해서다. 호메로스적 인간이 온갖 고난과 죽음을 무릅쓰고 최선을 다해 추구하는 것은 오직 명성이다. 인간에게 양심이라는 개념이 아직 없던 상황에서 동시대인들과 후세 사람들의 평판은 유일한 가치 척도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아킬레우스는 신들의 결정에 따라 장수하지만 명성 없는 삶과, 단명하지만 명성을 얻는 삶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고, 후자를 선택했다.

아킬레우스가 전쟁에서 적을 쓰러뜨리는 행위는 그에게 있어 자살 시도와 같다. 전쟁의 승리가 가까워질수록 그의 죽음 역시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아킬레우스는 단순히 아가멤논에게 전리품을 빼앗겼기 때문에 분노했던 것이 아니다. 목숨과 맞바꿔서 지키고자 했던 명예가 손상되었기 때문에 분노했던 것이다. 

아킬레우스가 그의 함선에 틀어박혀 아가멤논의 진심어린 사과와 오뒷세우스의 간곡한 설득에도 출전을 거부하는 모습은 단순한 아집이 아니다. 그는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운명을 알고 있었다. 또한, 전쟁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면 명예는 사라지나 수명은 길어진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함선에 틀어박힌 그의 모습은 필멸의 목숨과 불멸의 명예 사이에서 고뇌하는 그리스 영웅상이다. 파트로클로스의 죽음 이후 아가멤논에 대한 분노를 해소하고 참전을 결심하는 아킬레우스에게는 일종의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그리스인들은 바로 이 순간 그에게서 스스로의 운명을 짐작하고 있으면서도 명예를 위해 최후까지 투쟁을 선택하는 위대한 영웅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일리아스》의 마지막 장면은 아킬레우스가 아들의 시신을 찾으러 온 프리아모스 왕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헥토르의 시신을 내주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 시점에서 이미 아킬레우스는 트로이아 전쟁에서 헥토르를 쓰러뜨렸다는 최고의 명예를 얻었기 때문에, 운명에 의한 죽음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킬레우스는 늙은 헥토르의 아버지를 바라보며, 자신의 아버지도 곧 자식을 잃고 저렇게 슬퍼하시겠구나 공감하며 눈물을 흘린다. 고대 그리스인 독자들은 아킬레우스를 통해 성숙한 전사의 품위를 되찾고 불멸의 명예를 손에 넣은 뒤 당당하게 운명을 받아들이는 그리스 영웅의 전형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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